한 번도 경험 못 한 ‘신드롬’… 용이 될 것인가 잊힐 것인가?

2021-03-22
김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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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윤석열’ SWOT 분석

#강점(strength)
상식과 공정 말하며 ‘정의의 수호자’로 각인… 정치적 판단과 언어 감각도 뛰어나
#약점(weakness)
협상·타협 능력 검증 안 돼… 문 정권이 망친 ‘총체적 난국’에 대한 해법도 미지수
#기회(opportunity)
보수·진보에 얽매이지 않는 제3지대에서 ‘정의로운 헌법주의자’로 나설 수 있다면…
#위협(threat)
대한민국 좌경화 세력의 행태가 모두 악재… 국민의힘과의 관계 설정도 큰 시험대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한 뒤 검찰 청사를 떠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한 시간여 만에 수용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한 뒤 검찰 청사를 떠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한 시간여 만에 수용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 정치권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차기 대선에서 제3세력으로 출마할 경우 ‘찍겠다’는 응답이 45.3%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할 경우에 찍겠다는 응답 역시 45.2%로 비슷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11일 밝힌 조사결과다.

‘반문(反文) 선언’이나 다름없는 사퇴의 변(辯)이 말해주듯이 그는 이미 국민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줄 ‘국난극복의 해결사’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신드롬’은 일시적인 컨벤션 효과를 넘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쓰나미의 위력을 예고하고 있다. 그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건과 관련, 분노하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이끌어주는 지도자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권과 반칙 없이 공정한 룰이 지켜질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성군의 목소리인 옥음(玉音)과 같은 그 한 마디에 국민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보수를 박살 낸 윤석열이 보수의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것은 정치의 역설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정치의 속성 때문인가. 윤 전 총장의 인생 역정이 반전의 드라마처럼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는 내년 봄 마침내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 높이 승천하는 용으로 등극할 것인가. 스와트(SWOT) 분석으로 윤석열을 해부한다. SWOT란 기업의 내부환경과 외부환경을 분석하여 강점, 약점, 기회, 위협 요인을 토대로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기법이다.

 

◇강점(strength)=윤석열은 어느새 반문 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이미 좌고우면하지 않는 ‘수사주의자’, ‘정의의 수호자’로 각인되어 있다. 우선 검찰 개혁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두 법무장관(추미애, 박범계) 및 여권 다수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한치 꿀림 없이 당당하게 맞섰다. ‘상식과 공정’이라는 윤석열표 아이콘이 여기서 나왔다. 특히 어떤 정권이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로 좌천과 금의환향을 반복하며 국민들에게 ‘불의에 굴하지 않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윤석열은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일 뿐’이란 평가절하에 대해 “그가 밖에서 때려서가 아니라 맞서 싸웠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은 국가를 경영할 원칙과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같은 당 정진석 의원도 “윤 전 총장은 지난 1년간 권력 핵심층과 단기필마로 맞선 사람”이라며 “지사형 리더십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선천적인 정치인 DNA가 있는 것 같다. 정치적 판단과 언어 감각에서 나타난다. 여당이 수사청 속도 조절로 검찰을 압박하자, ‘국민의 도움’을 호소하면서 돌직구(사표)를 던졌다. 사퇴 전날 대구고검 방문에선 ‘박근혜 수사’에 대한 반감이 있는 대구를 향해 “어려울 때 나를 품어준 곳”이라고 했다. 그때 나온 ‘검수완박(검찰수사 완전박탈)은 부패완판(부패로 끝난다)’이라는 메시지는 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약점(weakness)=정치 리더의 기본인 협상·타협의 능력도 아직 검증된 게 없다. ‘검찰주의’를 신봉하는 윤석열은 평생을 ‘불법이냐, 합법이냐’로 세상일을 판단해왔다. 그러나 정치는 다양한 집단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조정하는게 핵심 임무다. 섣불리 한 쪽 입장을 편들었다가 나머지를 전부 적으로 만드는 게 정치 초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의리파’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에서 파격 승진을 하면서 검찰 요직에 측근들을 대거 배치한 것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과도한 ‘내 사람’ 챙기기에 불만을 가진 검사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이 같은 ‘형님 리더십’이 정치권에선 한계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친분을 중시하면서 지인들을 챙기는 게 정치에서는 큰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학’에 관한 폭넓은 학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북한과의 핵 위협 관리, 중국·일본·러시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또 보수와 진보로 나뉜 국민통합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 정권이 망쳐놓은 경제, 부동산, 양극화, 청년 실업, 고령화 등 총체적 난국에 대한 해결방안도 숙지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와 사회·복지는 정책에 따라 수혜자가 갈리고 계층, 사회적 갈등의 불씨마저 안고 있다. 윤석열의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부풀었던 대중적 관심은 급속히 꺼져 거품으로 그칠 수도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기회(opportunity)=보수 진영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는 등 적폐청산 수사를 강하게 주도한 것을 맹비난했지만 지금은 그를 차기 대선 후보로 지지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아랍권의 속담이 우리 정치에서 현실화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윤석열은 최종 보수 후보로 가는 과정상 결국 제3지대에서 주도권을 쥐고 치열한 한판 협상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과거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진보와 보수에 얽매이지 않는 제3지대에서 ‘정의로운 헌법주의자’ 이미지로 정치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기회 요인이다.

그는 또 586 좌파와 그들과 손잡은 골수 친문(親文)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장차 ‘반문 텐트’를 치는 데 전략적 제휴 대상으로 윤석열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대권후보의 지지율이 낮은 국민의힘은 싫든 좋든 간에 당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윤석열을 모셔올 가능성이 크다.

◇위협(threat)=윤석열은 이제 여의도의 대기권에 진입한 단계다. 대선 주자로서의 연착륙까지는 길다면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야당 대표는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했지만, 그때까지 윤석열은 숱한 장애물을 마주할 것이다.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도 검찰총장 임기를 포기하고 정치로 직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를 초토화시킨 ‘적폐 수사’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아내와 처가에 대한 네거티브도 상당할 것이다. ‘검사’ 외피를 벗고 ‘정치인 윤석열’의 비전도 보여줘야 한다. 혹독한 신고식과 검증이 뒤따를 것이다.

국민의힘과의 관계 설정이 그의 정치력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윤 전 총장이 대권에 도전하려면 102석인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제3지대를 대안 세력으로 키울수록 국민의힘과 패권을 둘러싼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정치에서 ‘○○○ 현상’이 성공한 적은 없다. 노무현 정부 때 ‘고건 현상’, 이명박 정부에서의 ‘안철수 현상’, 박근혜 정부 당시의 ‘반기문 현상’이 그랬다. 정치 세력 교체의 기대가 한 사람에게 몰렸지만, 당사자들은 그 부담을 견디질 못했다.

국회의 다수 횡포, 사법, 검찰, 언론의 좌경화 등은 윤석열에게 모두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동시에 달려들 때를 대비책, 방어-공격전략 또한 생존에 필수적일 것이다. 그래서 우군의 확보가 절대적이다. 중도·보수층의 상당수는 윤석열이 그런 벽을 뚫어 거여(巨與)가 질식시킨 지금 정치에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백성을 하늘처럼 받든다는 위민이천(爲民以天)! 여기에 답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