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나라가…”

2021-03-26
김동철 기자

크기(0)    뉴스 읽기

■美, 문 정부의 ‘인권 인식’ 지적

바이든 행정부가 구상 중인 파상적 대북 인권 공세의 예고편… 유엔에 이어 미국도 문 정부의 ‘직무유기’ 지적할 가능성 커져

북한 인권 관련 통일부를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김석기·김기현·태영호 의원이 지난 15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면담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위해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인권 관련 통일부를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김석기·김기현·태영호 의원이 지난 15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면담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위해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국무부가 문재인 정부의 표현의 자유 제약을 ‘중요한 인권 문제’로 언급해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인권 보고서엔 표현의 자유, 부패, 성희롱, 인권 NGO에 대한 문재인 정권을 향한 미국 정부의 시각이 담겼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패 혐의,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횡령·배임 기소,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문, 통일부의 탈북자 단체 2곳 설립 허가 취소 및 25곳 사무감사 등이 열거됐다.

외교가에서는 국무부가 북한 인권과 함께 여권 인사들의 부정부패와 성추행 사례들까지 언급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나라가 김정은 정권의 인권유린에 눈감다가 난처한 상황을 자초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미국이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 외면을 민주주의의 퇴행이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2020년 국무부 인권보고서 한국 편은 ‘보고서에 포함된 중요한 인권 문제’로 표현의 자유 제약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대북 전단 금지와 관련해 국무부는 “인권 활동가들과 야당 정치 지도자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비판했다”고 밝혔다.

최근 워싱턴에선 북 주민 인권이 날로 악화하는데도 외면으로 일관하는 문 정부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실망스럽고 부끄럽다. 부도덕하다”는 말도 공공연히 한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서울에서 ‘북 정권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주민 학대’를 공개 비판했다. 그런데 한미 외교·국방 공동선언에선 ‘북 인권’이란 문구가 끝내 빠졌다. 김정은과 남북 이벤트에 매달리는 문 정부가 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만나 미얀마 군부의 인권 탄압을 비판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노예나 다름없는 북한 주민 인권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신장과 티베트의 인권 문제와 홍콩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보고서는 또 대통령 참모 명예훼손으로 언론인의 징역형을 지적했다.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 국무부는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언론인 우 모 씨 사례를 언급했다.

국무부는 “국경없는기자회가 명예훼손을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사법 체계는 국제 기준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언론인이 대통령 참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했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가 명예훼손으로 1심 무죄, 2심 유죄 선고를 받은 데 대해서도 “보수 NGO들은 무죄 선고 파기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고 썼다.

국무부는 또 중요 인권 문제의 하나로 ‘부패’를 꼽았다. 조 전 장관과 아내, 다른 가족이 부패 혐의로 수사받았고,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준사기·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고 했다. 또 “성희롱이 중요한 사회 문제였다”며 공직자가 연관된 사건들을 나열했다.

미 국무부가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북한뿐 아니라 한국 내 인권 문제까지 조목조목 거론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구상 중인 파상적 대북 인권 공세의 예고편으로 평가된다.

김정은 정권과의 대화·협력을 이유로 북한 인권을 외면해온 문재인 정부의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무부 보고서의 일부 내용이 공개된 시점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첫 방한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주민 학대’를 거듭 지적한 직후다. 성 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이 “수주 내 완료될 것”이라고 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기도 하다.

로버타 코언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지난 20일(현지 시각)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 하고, 인권을 평화의 걸림돌로 여긴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에서 핵무기와 인권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문제 삼아야 한다”며 “(과거 소련·동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인권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핵 합의가 성사된 전례는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가 추진하는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에 3년 연속 공동제안국으로 나서지 않은 데 대해서도 “북한의 협박과 경고에 따른 결과고, 자존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최근까지도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테이블에 인권 문제를 올리는 건 우선순위가 아니다”(강경화 전 외교장관)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0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과 협상 시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루라고 공개적으로 권고했다.

외교 소식통은 “유엔에 이어 미국도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해온 문재인 정부의 ‘직무유기’를 지적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태도를 지적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3년 연속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 불참했고 자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북한 인권침해의 부각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 들어선 만큼 이 문제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공유하는 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