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일보

350조 판 커지는 ESS시장, K배터리 ‘뒷걸음질'-'달려나간' 中

2023-05-31
이주선 기자

크기(0)    뉴스 읽기
친환경 훈풍을 타고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매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삼성SDI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치한 240메가와트시(MWh) 규모의 ESS. /삼성SDI
친환경 훈풍을 타고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매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삼성SDI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치한 240메가와트시(MWh) 규모의 ESS. /삼성SDI

친환경 훈풍을 타고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매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배터리 업계의 저가 공세에 더해 국내에서 ESS 관련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때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국내 배터리 업계의 글로벌 ESS 시장점유율은 10%대로 곤두박질친 상황이다.

ESS는 태양광·풍력 등 불규칙적으로 생산되는 신재생에너지를 미리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전기 저장 시스템을 말한다. 컨테이너 1동 크기와 비슷한 ESS에는 전기차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배터리가 들어간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발전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와 맞물려 ESS가 미래 ‘효자 품목’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2030년 글로벌 ESS 시장이 35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 탈환을 위한 품질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30일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20년 55%에 달하던 국내 배터리업계의 글로벌 ESS 시장점유율은 불과 2년 새 14.8%로 폭락했다. 지난해에는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의 글로벌 ESS 시장 순위도 2, 3위에서 각각 4위와 5위로 내려앉았다.

글로벌 ESS 시장에서 K 배터리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반복된 화재의 영향이 크다.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만 총 39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사고만 8건에 달한다. 이 여파로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설치된 ESS 용량은 0.2기가와트시(GWh)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3.8GWh 규모의 ESS가 설치됐던 것과 비교하면 2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국내 ESS에서 화재 사고가 왕왕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주력으로 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재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NCM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효율성이 올라간다. 하지만 니켈 자체가 다른 금속보다 발화점이 낮은 탓에 이를 많이 함유할수록 화재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NCM 배터리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빈자리는 닝더스다이(CATL), 비야디(BYD), 이브이에너지(EVE) 등 중국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특히 CATL은 지난해 43%의 점유율로 글로벌 ESS 시장 1위에 올랐다. BYD와 EVE도 각각 11.5%, 7.8%의 점유율로 나란히 2위와 3위에 랭크돼 있다.

중국 기업들의 이 같은 선전은 상대적으로 화재 발생 빈도가 적은데다 저렴한 LFP 배터리를 앞세워 저가 공세를 펼친 결과라는 관측도 나온다. LFP 배터리는 NCM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성능은 떨어진다. 하지만 생산 단가가 30%가량 저렴한 덕분에 가격 경쟁력에서 NCM 배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신재생에너지의 확대에 힘입어 글로벌 ESS 시장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발전 비중이 높아지면 전력을 저장하는 ESS의 수요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690GWh로 지난 2021년의 392GWh 대비 76% 커졌다. 반면 같은 기간 글로벌 ESS 시장은 44GWh에서 122GWh로 177% 고속 성장했다. 성장 속도가 전기차 배터리보다 3배 가까이 빠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는 지난 2021년 110억 달러(약 14조6000억원) 수준에 그친 글로벌 ESS 시장이 오는 2030년에는 2620억 달러(약 347조9000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잇따른 화재로 자존심을 구긴 국내 배터리 업계는 ESS 관련 투자와 기술 개발을 통해 중국에 빼앗긴 시장 탈환에 본격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3조원 규모의 ESS 생산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삼성SDI는 전지의 소재·공법·시스템 등을 개선한 새로운 ESS 제품을 내세워 중국 업체들에 도전장을 내밀 예정이다. 후발주자인 SK온 역시 올해 초 미래 성장동력으로 ESS를 선정, 선박용 ESS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