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일보
인텔 '1.8나노 깜짝쇼'에도...삼성 등 파운드리 '무덤덤한 이유'
2023-09-22
이주선 기자

글로벌 파운드리 기술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이 내년부터 삼성전자와 TSMC에 앞서 초미세 공정인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을 선언한데 이어 ‘마(魔)의 영역’으로 불리는 1.8㎚급 반도체 웨이퍼 시제품도 깜짝 공개한 것이다.
1.8㎚ 공정은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TSMC가 양산을 시작한 3㎚ 공정보다 2세대나 앞선 기술이다. 아직 2㎚급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장비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탓에 빠르면 4년 후인 2027년에야 1㎚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인텔은 삼성전자와 TSMC보다 3년이나 앞당겨 생산 준비를 마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인텔의 이 같은 선언에 반도체업계는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은 초미세 공정 기술 경쟁도 중요하지만 영업마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결국 안정적인 수율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인텔이 이제 기술 개발이라는 걸음마를 뗀 단계라면 삼성전자는 이를 훨씬 앞선 수율 개선 작업과 고부가가치를 지닌 첨단 반도체 개발 등 내실 다지기에 돌입한 상황이다. 안정적인 수율은 물론 미래 파운드리 기술까지 확보해 경쟁사와의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고, 업계 1위인 TSMC를 바짝 추격하겠다는 의미다. 이미 수율 문제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철수한 전적이 있는 인텔의 기술 수준으로는 이번 전략이 ‘공수표’에 그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인텔 이노베이션 2023’에서 첨단 파운드리 로드맵을 공개했다. 1.8㎚ 웨이퍼 시제품 공개는 당초 2㎚ 수준의 웨이퍼를 내놓을 것이란 시장의 예상을 뒤집은 파격적인 발표였다. 인텔은 1.8㎚ 공정 기술을 앞세워 내년에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2위로 도약한다는 포부다.
아울러 반도체업계는 인텔이 내년 2㎚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오는 2025년 2㎚ 반도체 생산을 예고한 삼성전자와 TSMC의 계획보다 1년이나 빠른 덕분이다.
하지만 인텔이 단기간 삼성전자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직 수율에선 삼성전자가 인텔보다 우위에 있는 만큼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사를 두루 확보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텔이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해 굵직한 고객사를 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인텔은 지난 2018년 7㎚ 공정 개발 당시 수율을 비롯한 기술적 한계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더구나 인텔이 2㎚는 물론 1.8㎚ 반도체 양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극자외선(EUV) 장비 ‘하이NA’가 필요하다. 하이NA는 ‘슈퍼 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회사인 ASML의 제품으로 초미세 공정 구현을 위한 필수 장비로 꼽히고 있다. 기존 EUV보다 렌즈와 반사경 크기를 키워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 ASML의 설명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하이NA 수급에 따라 2㎚ 공정 기술 패권의 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하이NA는 내년에야 공급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제 막 개발을 마치고 시험 운용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장비 공급은 내년 말 또는 내후년 초부터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가 2025년을 2㎚ 반도체 양산의 원년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장비 공급이 원활치 않아서다.
삼성전자는 오는 2025년 2㎚ 반도체 생산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TSMC보다 먼저 초미세 공정을 선보여 파운드리 시장의 주도권을 쟁취하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2025년 2㎚ 공정의 모바일용 반도체를 양산한 이후 2027년까지 1.4㎚ 공정 개발을 완료하면서 본격 1㎚ 반도체 시대를 연다는 청사진을 그린 상태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새로운 파운드리 사업에도 도전한다. 최신 전력반도체인 질화갈륨(GaN) 칩을 양산한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전력반도체는 각종 정보기술(IT) 기기에서 전력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불필요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해 사용 비용도 줄이고 IT 기기를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재 전력반도체는 전기 소모가 큰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는 지난 2019년 450억 달러)에서 올해 53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