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인가 벌금인가… ‘부동산 잡겠다’는 오기가 낳은 참사

2021-04-09
윤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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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폭탄 ‘종부세’ 논란

공시가격 9억 원 아파트 경우 2채를 공동명의로 보유한 부부는 1채씩 단독 명의로 보유한 부부에 비해 종부세를 3배가량 내는 것으로 나타나… 선량한 국민들 피해 불가피

부유세이자 일종의 징벌적 과세인 종부세가 어떤 법적 근거로 1주택자에게도 부과되는지 납득 어려워… ‘영끌’로 집 마련해 은행 이자 갚기에도 허리가 휘는데 세금 폭탄까지

지난달 29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3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0억 9993만 원으로 전달(10억 8192만 원)보다 1801만 원 올라 11억 원 돌파까지 불과 7만 원만 남겨뒀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3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0억 9993만 원으로 전달(10억 8192만 원)보다 1801만 원 올라 11억 원 돌파까지 불과 7만 원만 남겨뒀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세금 폭탄'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종부세(종합부동산세)에 대한 공포가 가시화하면서 정부 정책만 믿었던 선량한 국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국민들의 ‘정부 불신임’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공동명의로 주택을 구입한 경우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종부세 납부에서 폭탄을 맞는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 9억 원 아파트 경우 2채를 공동명의로 보유한 부부는 1채씩 단독 명의로 보유한 부부에 비해 3배가량의 종부세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을 잡겠다며 펼친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으로 올해 종부세율이 크게 오른 결과다. 2채를 공동명의로 보유한 부부의 종부세는 작년 92만 원에서 올해 276만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전년 대비 종부세 부담이 3배가 된 것이다.

종부세액을 결정하는 공시가격이 1년 새 7억 2000만 원에서 9억 1200만 원으로 올랐고 세율도 2배 수준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가 각자 단독 명의로 보유할 경우 종부세는 지난해 66만 원, 올해 99만 원이다. 작년에는 공동명의와의 차이가 26만 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3배 가까이로 엄청 커진다.

종부세는 주택의 지분을 가진 경우도 1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부부가 2주택을 각각 단독 명의로 등기하면 각각 1주택을 보유한 게 되지만 공동명의를 하면 부부가 둘 다 2주택자로 다주택자가 된다.

올해부터는 다주택자 종부세율이 크게 올라 1주택자와 차이가 더 커졌다. 서울, 경기 등 조정대상지역의 2주택자는 종부세율이 지난해 0.6~3.2%에서 1.2~6.0%로 2배 수준이 된다. 이에 비해 1주택자는 0.5~2.7%에서 0.6~3.0%로 2주택자에 비해 오르는 세율이 많이 낮다.

게다가 1주택자는 보유 기간이나 나이에 따라 세액공제 혜택도 볼 수 있어 실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차이는 더 벌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부부 공동명의가 이미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부동산을 잡겠다“며 다주택자 때리기에만 열중하다 보니 벌어진 코미디같은 역차별”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부부 공동명의뿐만 아니라 상속 사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부모가 사망해 자녀들이 집을 공동 상속 받을 경우 원래 1주택자였던 자녀들이 갑자기 다주택자가 돼 종부세 폭탄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상속은 상속받은 지분이 20% 이상이거나 지분에 해당하는 집값(공시가격)이 3억 원을 초과할 경우 주택 수에 포함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이 1년 새 무려 19%나 급등하면서 종부세(1가구 1주택 기준 9억 원 초과) 부과 대상이 되는 공동주택이 52만 5000가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에 비해서는 7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고가 아파트에 부과했던 종부세는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을 넘어 서민 주거지로 분류되던 노원·성북·구로 등 서울 전 지역으로 대상 가구가 확대되는 추세다. ‘강 건너 불구경’으로 여겼던 종부세가 자신에게도 현실이 됐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다른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우리나라의 종부세는 가혹할 정도다. 부동산에 부유세를 도입한 프랑스를 제외한 주요 국가에는 종부세가 없다.

재산세도 한꺼번에 급등해 주민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갖가지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부동산의 감정 가격 인상이 전년도 평가액의 6%를 넘지 않도록 조정하고,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주택 평가액의 연간 인상률이 2%를 넘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영국은 일종의 거주세 개념으로 주인이든 임차인이든 실거주자가 세금을 내는 구조다. 무상 의료와 교육 등 해당 도시에 살면서 누리는 각종 서비스에 대한 비용인 셈이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프랑스도 세율이 우리보다 낮은 데다, 주택 매입에 들어갔던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이 130만 유로(약 17억 5000만 원)를 초과할 때에만 부유세를 부과한다.

부유세이자 일종의 징벌적 과세인 종부세가 어떤 법적 근거로 1주택자에게도 부과되는지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올해 2월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을 넘고 2월 한 달간에만 주택담보대출이 6조 4000억 원이나 폭증했다. 대부분 빚으로 집을 장만했기 때문이다. ‘영끌’로 간신히 집을 마련해 은행 이자 갚는 데도 허리가 휘는데 여기에 급등한 재산세에 종부세까지 내야 하는 상황을 국민이 수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금 부과와 징수의 근거는 국회에서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조세 법률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법 집행 기관인 행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에게 예측하기 어려운 재산상 피해를 주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산권에 대한 침해로 볼 수 있다. 결국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부담을 주택 소유자에게 전가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3월 들어서면서 세계 증시가 각국 정부의 과도한 재난지원금 살포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로 주춤거리고 있고 국내 은행의 대출금리도 오름세로 돌아서 잔뜩 거품이 낀 집값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 집값이 떨어진다면 정부는 미실현 이익에 대해 매긴 세금을 돌려줘야 한다.

국토부는 얼마 전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하면서 “전체 공동주택의 92%가 공시가격 6억 원 이하이며, 재산세율 0.05%포인트의 감면 혜택을 받는다”고 마치 선심 쓰듯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원칙과 기준도 공개하지 않는 공시가격 인상을 통해 국민을 10%의 ‘가진 자’와 90%의 ‘못 가진 자’의 2분화로 계층간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우왕좌왕 정책에 국민들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