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우리가 보는 남북평화, 세계가 보는 남북평화

2021-05-11
현종민 전 美 조지워싱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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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햇볕 정책이니 균형개발 정책이니 하여 무상지원으로 남북한 평화를 이루려 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남북평화가 이루어졌는가? 핵무기 갈등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한국 정부의 균형개발 정책이 북한에 대한 우리나라식의 평화 공세인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남북한의 평화를 높이는지 또는 양측의 갈등을 고조하는지는 과거 경험을 통해 점검해 보아야 한다

현종민 전 교수
현종민 전 교수

1989년 봄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천만 이산가족위원회 대표들이 스위스 수도 빈에 있는 적십자위원회를 방문했다. 남북 이산가족의 슬픔을 전하고, 이산가족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방문이었다.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지낸 다음 날 아침, 북한군들이 들이닥쳤다. 그 바람에 세수하던 남편은 뒷동산으로 피했고, 그 후로 부부가 이별하여 40여 년간 소식 없이 살고 있다는 이산가족의 슬픔을 전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이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은 적십자위원회가 할 수가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적십자위원회는 스위스 정부 관료 25명이 운영하는 외교기관이었다. 유럽에서 1853~1856년 사이 러시아 제국과 영국, 프랑스 제국 등이 참여하고 현대무기를 사용한 치열한 크리미아 전쟁에서 부상자 치료와 포로교환·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나이팅게일의 활약도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당시 천만 이산가족위원회는 제2의 적십자운동이라는 이론을 개발했다. 그것은 우리가 형제의 마음으로 적군을 돕고 대화하면 서로 교류가 이루어지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다는 한국식 평화 접근법이었다.

스위스 관료들은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심각했었다. 우선 적십자운동은 포로교환이 주목적이고 조건 없는 평화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1853년 이래 1, 2차 세계대전에서의 포로교환과 평화유지는 전쟁에서의 승리로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스위스는 중립국가이지만, 국방을 위해 징병 의무제를 실시한다. 강한 군대가 스위스에 중립국가의 위상을 높인다는 것이다. 평화는 힘에서 온다는 뜻이다. 우리 대표팀은 머쓱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간디의 무저항 평화운동을 배웠다. 그 방법이 평화를 이루는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배웠다. 강한 바람으로 윗옷의 단추를 강제로 푸는 것보다 햇볕으로 푸는 것이 현명하다고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사랑으로 한반도의 평화는 찾아오리라 막연히 믿고 있다. 한국인의 정으로 맺어진 문화정서는 간디의 평화사상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남북평화는 아직도 한반도에 오고 있지 않다.

1961년 당시 유고 대통령 티토가 세계분쟁에서 불럭 비가담운동인 비동맹운동을 인도의 네루,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이집트의 낫세르와 함께 비동맹 중립 평화개념을 내놓았다. 평화는 갈등의 양편 중 약한 편을 도와야 평등이 오고 그리하여 양측의 갈등이 해소된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노르웨이의 북구권 국가도 군비경쟁과 군축 협상이 세계평화를 가져온다고 했다. 그들의 평화연구소는 군축연구소와 동의어이다. 노벨상의 노벨도 지뢰 무기를 발견하여 세계평화상을 만들었지 아니한가. 1991년 12월 26일에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국제관계는 ‘힘의 균형’ 이론이었다. 계속 균형을 위해 경쟁을 해야 한다. 무기 개발 경쟁이 서구의 평화개념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북한에 햇볕 정책이니 균형개발 정책이니 하여 무상지원으로 남북한 평화를 이루려 하고 있다. 동족상잔의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에 더는 없어야 한단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상대가 있지 아니한가. 그렇게 하여 지난 50년 동안 남북평화가 이루어졌는가? 핵무기 갈등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가고 있지 아니한가?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이 평화운동이었다. 그 당시가 지금보다 더 남북통일의 가능성을 높였었음을 근래에 와서 많은 국민이 동감하고 있다. 북한 포로들도 풀어 주었고 한미 동맹을 맺어 매년 군비 훈련도 하고 경제발전, 사회발전, 민주·정치발전의 기초를 적극적으로 닦아 놓았다.

1952년 맥아더의 만주 폭격, 1990년 판문점 미루나무 도끼 만행 시 북한 폭격, 1993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폭격, 최근의 김정은 암살 및 핵시설 폭격 계획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기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한국 정부의 균형개발 정책이 우리나라식 북한에 대한 평화 공세인 것 같다. 이러한 우리나라식 평화 공세가 남북한의 평화를 높이는지 또는 양측의 갈등을 고조하는지를 과거 경험과 지혜를 통해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남북 평화운동도 학교 교육의 평화운동 교육의 서구화에서 학생들이 비교하여 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