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무시하고 일류 기술 사장한 결과”… 전력수급 비상경보

2021-07-19
윤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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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脫원전 피해 추산조차 불가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력난 심각한 문제로 부상… 정부는 시운전 중인 석탄화력발전기를 조기 투입하고, 영구 정지된 석탄화력발전기 재가동 검토

전문가 “정부가 탈원전·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밀어붙이기 위해 전력 수요 낮춰 잡은 탓에 수요 예측 실패”… 윤 전 총장 “출마 결심 배경에 원전 관련 정권 압박 큰 작용”

전국 곳곳에 낮 기온이 30도 이상 오르면서 무더위가 계속된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서초구청이 제공한 우산을 쓰고 검사 대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곳곳에 낮 기온이 30도 이상 오르면서 무더위가 계속된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서초구청이 제공한 우산을 쓰고 검사 대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으로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2013년 8월 이후 8년 만에 ‘전력수급 비상경보’ 발령 가능성에 처했다.

폭염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활발해지면서 산업 활동 증가의 영향으로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력난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때마침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원전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5일 오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도해온 서울대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만나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을 청취하고, 원전 산업을 다시 활성화할 전반적인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면담 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은 “월성 원전 사건이 고발돼서 저희가 대전지검을 전면 압수수색 진행하자마자 감찰과 징계 청구가 들어왔고, 어떤 사건 처리에 대해서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들어왔다”며 출마 결심 배경에 원전과 관련한 정권의 압박이 큰 작용을 했음을 시사했다.

윤 전 총장은 앞서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 회견에서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를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며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한 탈원전 정책도 그 가운데 하나다”며 지목한 바 있다.

윤 전 총장은 이어 지난 6일에는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를 방문해 원자핵공학과 학부·대학원생들과 오찬을 하는 등 원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 의견 청취를 넘어서 ‘한국 원전의 미래’인 원자핵공학 전공 학생들로부터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계획의 하나라고 윤 전 총장 측 관계자는 밝혔다. 특히 윤 전 총장은 출마 회견 전부터 외부 자문단 등을 통해 원전 관련 전문가들과 만나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7월 들어 국내 전력 수급 상황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정부는 심지어 시운전 중인 석탄화력발전기를 조기 투입하기로 했고, 영구 정지된 석탄화력발전기를 재가동하는 방안까지 한때 검토할 만큼 다급하게 대처방안을 찾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원전이 맡았던 전력생산 부분이 심각하게 줄어든 게 이 같은 비상사태를 야기했다.

다급해진 산업통상자원부는 ‘여름철 전력 수급 전망 및 대책’을 세웠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는 94.4GW에 이를 전망이다. 111년 만의 폭염이 닥쳤던 2018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92.5GW)보다 1.9GW나 높은 수치다.

화재로 가동 중단된 원전 신고리 4호기가 재가동되기 직전인 이달 넷째 주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예비 전력이 4GW(예비율 4.2%)까지 떨어져 2012년 2.8GW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산업부는 보고 있다. 예비 전력은 공급 능력에서 최대 전력 수요를 뺀 값으로, 이 수치가 5.5GW 밑으로 떨어지면 정부는 기업들에 전기 사용 자제를 요청하고 기동 가능한 자체 발전기 가동 등의 조치를 하게 된다.

전력 수급 비상경보 발령은 지난 2013년 8월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 예상대로 올해 예비 전력이 4GW까지 떨어지면 2011년 9월 대정전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당시 정부는 예비 전력이 3.43GW까지 떨어지자 일부 지역을 강제 단전(斷電)했다. 이 때문에 서울을 비롯해 전국 212만 가구가 한꺼번에 전기가 나갔다.

정부는 빠듯한 전력 공급을 메우기 위해 시운전 중인 석탄발전기인 고성하이 2호기와 LNG 발전기인 부산복합 4호기도 투입하기로 했다. 당초 이미 영구 정지한 석탄발전기인 삼천포 화력 1·2호기와 보령 화력 1·2호기를 재가동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가 소요시간 등 현실적 제약 때문에 포기했다.

정부는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방전 시간을 전력 수요 집중 시간대로 조정하고, 여름휴가 분산 등을 기업에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7000억 원을 들여 보수해 2022년 11월까지 가동하기로 했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포함해 정비를 이유로 멈춰 세운 원전이 너무 많다”고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현재 원전은 24기 중 16기가 가동 중이고, 8기가 정비 중이다. 신고리 4호기는 화재로 고장 정비 중이고, 나머지 7기는 계획 예방 정비 중이다. 그러나 한빛 4호기는 2017년 5월부터 4년 넘게, 한빛 5호기는 지난해 4월부터 1년 넘게 정비를 이유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탈원전·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전력 수요를 낮춰 잡은 탓에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4월 국내 25번째 원전으로 준공됐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운영 허가를 내주지 않아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경북 울진 신한울 1호기의 경제적 피해가 매달 45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한울 1호기가 계획대로 정상 가동됐을 때 예상되는 연간 발전량은 899만 8535MWh, 발전 수익은 연간 5400억 원에 달한다. 당초 한수원 계획대로라면 신한울 1호기는 운영 허가를 받아 이달 가동을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원안위는 비행기 충돌 위험,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허가가 더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대출 의원은 “신한울 1호기 운영 허가 지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등 정부의 탈원전 피해 규모는 추산이 불가할 정도”라며 “이로 인해 전력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