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이순신의 항명-광화문으로 진격하라 ⑳

2021-09-03
김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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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과 장졸들은 들어라… 이제 나라를 다시 세워라

#재조산하(再造山河)

이순신은 한평생 순공망사(徇公忘私), 사적인 일보다 대의를 우선시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의 삶은 햇볕에 바래 역사가 됐고 달빛에 물들어 신화로 남았다.

“이순신의 혁혁한 공적을 황상(皇上 명 황제)에게 상문(上聞)하여 성단(聖斷)을 받아 포상하겠소이다.”

조선 주둔군사령관 경리 양호가 이렇게 말하자 국왕은 “우리의 도리로서 미안하여 사양합니다”라고 했다. 국왕은 한술 더 떠 이순신을 폄훼하고 있었다.

“조선의 장수들은 능히 왜적을 토벌하지 못하고 천자(天子 황제)의 조정을 번거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유죄를 기다릴지언정 무슨 기록할만한 공적이 있단 말입니까.”

국왕은 명 황제가 이순신에게 내린 명조팔사품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노량해전에서 전투수행중인 이순신에게 전갈을 보냈다.

“전투가 끝나는 즉시 한양으로 올라와 명 황제의 명을 받아라.”

이순신이 전몰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내린 명령이었다.

‘음, 이순신을 요동 도독으로 임명하시겠다는 황상의 성단은 내겐 신의 한 수가 될 터이다. 연전연패 승전을 했노라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또 그 칼끝이 내게로 향한다면? 아아악! 안 될 말이다. 야수같이 날랜 야인(여진족) 놈들과 한번 붙어보라지. 거기가 네 무덤이 될 것이다. 흐흐흐.’

국왕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심 반기는 모습이었다.

순신이 명나라 요동 도독으로 간다는 풍문은 남해안은 물론 전국적으로 쫙 퍼져나갔다. 전국 각지에서 장졸과 백성들이 한성 광화문 광장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1592년 임진년 국왕이 피난을 떠나자 도성의 백성들은 경복궁과 형조, 장례원(노비 문서 관리와 소송기관)을 불태운 뒤 의정부와 육조거리의 관청을 차례로 때려 부쉈다. 그때 불에 탄 광화문은 볼썽사나운 흉물로 남아있었다. 폐허가 된 관청에서 성한 기와, 대들보, 서까래를 찾기 어려웠다.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물(백성)은 배(임금)를 띄우기도 하지만, 성난 민심은 배를 엎어버렸다. 이게 동서고금을 통해 백성들의 최후 저항 방식이었다.

“아니 뭐? 한평생 몸 바쳐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님을 명나라 장수로 보낸다고? 어이가 없네그려.”

“미친 짓일세.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걸 보니 국왕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로군.”

“잘 됐지 뭐야. 못난 임금이 제 나라 장수를 보호하기는커녕 못 잡아먹어 안달복달했으니 말이야. 시원하겠군. 허허.”

광장에 운집한 백성들은 모처럼 만에 말문이 트인 듯 각자 속에 품고 있는 말을 스스럼없이 토해냈다. 어디서 구했는지 전장에서 쓰던 칼, 창, 활과 낫, 곡괭이 등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여태까진 가재, 붕어, 게로 숨죽여 살아왔지만 이젠 그놈의 지긋지긋한 탐관오리놈들의 학정을 더는 못 참겠다는 것이다. 그래! 개 돼지들의 맛이나 보여주자!”

부지깽이를 든 40대 여인네가 악에 받친 듯 손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빽빽 질렀다.

외적과 탐관오리, 내우외환에 신물이 난 민심은 들끓고 있었다. 무엇보다 탐관오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도탄에 빠진 백성은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는데 극렬한 적개심마저 품었다. 또 궁궐과 성곽 수축, 토목공사에 동원되어 변변한 대가도 못 받았다. 그런데 양반들은 농사도 짓지 않고 부역에도 동원되지 않은 채 공자 왈, 맹자 왈, 성리학을 외우며 허송세월을 했다.

“임금이나 양반 나리들이 공정이니 정의니 하는 입에 발린 말은 모두 개소리요. 망할 놈의 세상!”

눈에 핏발이 선 남자가 이판사판! 세상을 엎어버리자고 고함을 꽥 질렀다. 그러자 백정이 쓰는 칼을 쥔 한 남자가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입을 열었다.

“난 무식한 천민 백정이라 공정, 정의 같은 말은 모르고, 소 돼지 잡는 데는 이골이 났단 말이여. 그래 어떤 놈이건 이 칼로 금방 해치우는 데는 선수지, 암.”

“왕이고 나발이고 그 썩을 놈들이 어디 좁쌀 한 톨이라도 줬냐? 외려 왜놈들은 쌀, 보리, 좁쌀을 조금씩이나마 배급이라도 했지. 흠.”

“아, 되놈들은 이쁜 여자 고른다고 집구석 다 뒤지며 분탕질 쳤지 뭐야.”

“이 모든 게 누구 때문이야. 못난 국왕을 만난 우리네 팔자소관인가. 흠.”

“아, 그래서 그동안 쌓인 적폐를 모조리 쓸어버리자는 것 아녀.”

한 사내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허공에다 낫을 거칠게 휘둘렀다.

나라 황제는 만주의 여진족이 나날이 강성해지면서 끊임없이 중원을 공략하자 이순신을 앞세워 여진족을 치겠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쓰고 있었다. 즉 동쪽 오랑캐인 동이(東夷)족 장수를 앞세워서 동이족인 여진을 쳐내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결국 명나라 제단에 오를 희생물이 될 처지에 놓였다.

“자 자, 백 마디 천 마디 말은 소용없소. 한 가지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당장 궁궐로 쳐들어가 국왕을 끌어냅시다. 앞으로 진격!”

와! 와! 와! 흥분한 군중은 마침내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무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때 갓과 도포 차림의 한 선비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다 맞는 말들이오. 허나 우리가 떼로 몰려가는 것보다 이순신 장군님이 먼저 가셔서 말씀을 해야 옳지 않겠소?”

“아 맞다. 근데 이순신 장군님이 어디 계시지?”

“이봐 양반 나리, 전쟁통에 어디서 숨어지내다 이제 와서 왈가왈부요?”

“야 삼돌아!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우리 편이 필요해. 배운 선비가 있으면 글도 읽어주고 좋지 않냐.”

“내 참 더러워서 이참에 사농공상! 그놈의 신분제도를 다 깨부수자고, 누군 뼈 빠지게 농사짓고 누군 앉아서 밥값도 않고 받아쳐 먹는 이 우라질 놈의 세상, 신물이 난다.”

“장군님! 어디 계십니까? 빨랑 나오세요.”

“어, 근데 말이야. 장군님이 노량전투에서 전사하셨다는 말이 들리던데.”

“아닐 걸, 난 장군님이 지리산 어딘가 은둔했다는 말을 들었어.”

“아냐, 지금쯤 임금에게 불려 와 황제의 명을 받고 있을지도 몰라.”

침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소낙비가 장대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햇살이 비치며 검은 한 점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환생한 이순신 장군님의 모습이 역력했다.

“야 저기봐라. 장군님이시다.”

“와, 장군님이 맞네그려. 오셨다.”

“하늘이 내신 분이셔. 우리 원통하고 기막힌 한을 풀어주시려 오신 게 맞네그려.”

광화문 광장에 사뿐히 발을 디딘 이순신 장군의 곁에는 두 자루의 칼이 호위를 하듯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다.

“장군님! 저 썩어빠진 친명사대주의자 국왕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

“자, 여러분 진정들 하시오. 장군님이 곧 임금을 만날 것이요.”

큰아들 회가 나섰다. 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지 한 통을 아버지께 전했다. 환생한 이순신이 국왕이 머무르고 있는 행궁으로 방향을 잡자 군중은 양편으로 갈라져 길을 터주었다. 국왕은 피난 후 정릉방 월산대군 사저에 머물고 있었다.

왕은 바깥 사정을 까맣게 모른 채 낮잠에 취해있었다.

“에잇! 곤한 잠을 깨는 놈이 누구란 말인가? 어, 아니 네가 웬일이냐? 노량에서 나 보기 싫어서 면주(免冑 투구를 벗음)하고 조총을 맞아 자살했다는 말이 들리던데…. 그렇다면 너는 유령이란 말이냐?”

“음, 그런 한가한 말을 할 겨를이 없소이다. 먼저!”

“잠깐! 내 말부터 들어라. 우선 대명국 황제의 명을 받들어 하해(河海)와 같은 은덕에 감사의 예를 표하라.”

국왕은 황제가 보내온 도독 임명장과 도독인(都督印)을 포함한 명조팔사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순신은 국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못 들었는가! 귀가 먹었나? 황제의 명을 거역한다니…. 너만 죽는 게 아니고 나도 죽으니 말이다.”

“같이 죽으면 되질 않소? 나는 할 일이 있어 못갑니다. 아니 절대 안 갑니다!”

“저런 경을 칠 놈을 봤나. 여봐라! 당장 이 무엄한 역도를 끌어내 참수하고 광화문에 그 머리를 효수하라!”

고함을 지르며 역정을 낸 국왕은 기운이 다한 듯 고개를 축 내려뜨리고 있었다. 이순신은 왕의 실정과 실덕에 대해서 조목조목 지적했다. 마치 위관(委官 재판관)이 대역죄인을 심문하는 자리 같았다. 국왕은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오만방자한 태도로 나라를 망친 장본인이었다.

첫째,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데, 사람을 잘못 뽑아 쓰는 망사(亡事)를 한 결과 국가자살행위를 저지르고 말았다.

“남인을 견제하고 서인의 눈치를 보느라 무자격자인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 것은 최대의 인사 실책이었소.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했고 나라의 안위를 지킬 군대가 없어졌다는 사실은 여적죄(與敵罪)에 해당하오. 적을 이롭게 한 죄란 말이오. 또 목릉성세라 할 정도로 난세의 영웅들(이이, 류성룡, 이원익, 정탁, 정언신, 정걸, 이항복, 이덕형 등)이 나왔지만 적재적소에 등용하지 못해 나라를 결딴냈단 말이오. 내 편 네 편 따진 결과 망사의 달인이 된 것이오.”

둘째, 주변국 외교, 안보와 국방에 어두운 혼군(昏君)이 되어 전화(戰禍)를 막지 못한 책임은 군통수권자인 국왕의 무한 책임이었다.

“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대마도주는 조총 두 자루를 바치면서 일본에 통신사를 보낼 것을 요청했소. 그때 조총을 무슨 지게 작대기인 줄 알고 군기시 창고에 처박아버렸지요? 오랑캐 왜놈 따위를 우습게 보다가 호되게 당한 것이란 말이오. 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소. 상대를 알려고 하지 않은 오만과 우둔함이 나라를 거덜나게 만들었단 말이오.”

셋째, 당쟁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위와 신변 보호에만 힘썼다.

“어린 왕자(신성군)와 세자(광해군)를 따르는 무리를 이간질해 국정을 농단한 죄, 그리하여 의심증이 심한 광해는 왕좌에 올라 폐모살제(廢母殺弟)!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그 아들 영창대군을 죽였고 광해군 역시 인조반정으로 비참한 죽임을 당했소. 이게 다 국왕이 뿌린 업보가 아니겠소. 그건 알고 있소? 당쟁이 국왕 당대에 시작된 폐해라는 사실을.”

넷째, 백성 구제에 눈을 감았다.

“무릇 백성이란 배가 불러야 태평한 법이오. 그런데 임금은 주지육림에 빠져 살고 백성들은 염병과 기근에 시달리며 탐관오리의 학정에 곤죽이 됐소.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사람이란 먹을 것이 족해야 예절도 아는 법이오. 국왕은 애민이란 말의 뜻을 알고는 있소?”

다섯째,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회복을 등한시했다.

“전란 후 농토가 130만 결에서 30만 결로 크게 줄어들었소. 탐관오리들은 방납업자와 결탁해서 전세, 부역, 환곡에 대해 과다한 세금을 뜯어갔소. 조세제도의 맹점을 해결하기 위해 율곡 이이가 올린 대동법을 쳐다는 봤소? 또한 일본은 천대받는 조선 도공들을 데려가 대우를 잘해주었고 그 우수한 기술로 만든 도자기가 해외로 팔려나가 엄청난 국부를 창출했소. 사농공상 성리학의 나라! 기술을 우습게 아는 그 허울 좋은 체제를 깨부숴야 한다는 말이오.”

국왕의 적폐를 질타하는 이순신의 말은 아들 회를 통해서 군중들에게 속속들이 전해졌다.

“이런 무능하고 무자격자인 자가 왕이랍시구 거들먹거렸으니…. 나라가 안 망해!”

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꼼짝하지 않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겸사복(경호무사) 한 명이 이순신의 등 뒤로 예리한 비수를 날렸다. 절체절명의 상황, 예의 그 두 자루의 칼 중 제1번 칼이 비수를 쳐내자 튕겨나가 국왕의 정수리에 박혔다. 제2번 칼은 겸사복의 목줄을 단숨에 땄다. 얼굴에 붉은 피가 난무한 국왕은 어기적거리며 용상에서 내려와 이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시오. 이 장군, 내 이렇게 빌고 있소. 살려주…. 흐흑.”

“그렇다면 여태껏 저지른 적폐를 시인하고 반성하는 것이요? 아니면 목숨만을 구걸하는 것이요?”

국왕은 가타부타 대답 없이 묵묵부답이었다.

“알겠소. 이참에 꿈에 그리던 명나라로 가시오. 임진년에도 명으로 내부(內附 망명)하겠다고 는 입에 달고 다니지 않았소? 강화도에 배를 준비해 놓았으니 그리 아시오.”

“어엉엉, 고맙소이다. 내 생명의 은인이시여.”

이순신은 낮게 깔린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어디론가 떠났다. 하얀 종이 한 장이 붉은 동백꽃과 함께 바람을 타고 군중 속으로 떨어졌다. 아들 회가 종이를 주워 큰 소리로 읽었다.

“재조산하(再造山河)!”

와! 와! 와!

“이순신 장군님 만세!”

“근디 재조산하라, 그 말이 대관절 뭔 뜻이여?”

선비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광화문 앞 월대에 올라섰다.

“재조산하라 함은,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이니 앞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군주와 세상을 만나게 될 것 같소.”

와! 와! 와!

“근디 아까 가보니께 왕이 없어졌던데. 그 능글맞고 못난 인간, 대체 어디로 간겨?”

“글씨, 땅속으로 박혔나 하늘로 솟았나.”

“재! 조! 산! 하! 난 이 동백꽃 향기나 맡으며 기다릴 것이여. 흠.” <끝>

김동철 : 교육학 박사, 성결대 교양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기자, 저서 ‘우리가 꼭 한번 만나야 하는 이순신’ 외 다수
김동철 : 교육학 박사, 성결대 교양학부 교수, 전 중앙일보 기자, 저서 ‘우리가 꼭 한번 만나야 하는 이순신’ 외 다수

 

★자유일보에 인기리에 연재된 김동철의 역사소설 ‘이순신의 항명-광화문으로 진격하라’가 마침내 단행본으로 출간됐습니다. 인터넷은 물론 전국 유명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주문이나 서점 방문이 불편하신 분들은 전화(010-2142-8776)로 문의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