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목회자’ 영면에 들다… 조용기 목사 천국환송예배 엄수

2021-09-24
오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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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거목 조용기 목사 장례식이 지난 18일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한국교회장으로 치러져… 온라인에서 “사랑합니다” 추모 열기 계속

위대한 설교자이자 뛰어난 영성가로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부흥 이끌어… 한국교회총연합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확산에 지대한 공헌 남겨”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마련된 고 조용기 목사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마련된 고 조용기 목사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교회의 거목’ 조용기 목사의 장례식이 치러졌지만, 추모의 물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조 목사의 마지막 설교와 함께 생전 어록이 올라왔고, 인스타그램에서도 조 목사의 묘소 위에 꽃다발을 올려놓은 사진과 함께 “보고 싶네요, 사랑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조 목사는 지난 14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조 목사는 작년 7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오전 작고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베다니 홀에 차려진 빈소에 수많은 인사가 조문했다.

지난 18일 오전 여의도 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한국교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예배에도 엄숙하게 진행됐다. 하관 예배는 장지인 파주시 오산리 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역에서 열렸다.

유족은 조희준, 민제(국민일보 회장), 승제(한세대 이사) 등 3남이 있다. 조 목사의 아내 김성혜 한세대 총장은 지난 2월 7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6년 경남 울주군에서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조 목사는 1958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 최자실 전도사(조 목사의 장모) 집 거실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전도사였던 조 목사와 최 전도사가 밭일하다 비를 피해 들어온 주부 등 모두 5명이 사과 상자에 보자기를 덮은 강대상을 놓고 예배를 드렸다.

예배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마당에 천막을 치고 천막 교회를 개척했다. 이 교회가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시초이다. 천막 교회는 당시 개신교계의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창립부터 방언(성령의 힘으로 말하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과 신유(신의 힘으로 병이 치료되는 것)를 강조한 조 목사의 뜨거운 목회는 입소문을 타고 신도 수 급증으로 이어졌다.

천막 교회 창립 3년 만에 서대문 로터리 부흥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교회를 이전했다. 1973년 여의도 순복음교회 입당 예배 때 1만 명의 교인은 1979년 10만 명, 1984년 40만 명을 넘어섰다. 1992년에는 70만 명을 넘어 1993년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조 목사는 1992년부터 16년 동안 세계 하나님의 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에 매진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했고, 이듬해에는 사회 구원을 위해 비정부기구(NGO)를 세워 국내 인권 환경 보건 및 아동 복지 증진에 앞장서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4차원의 영적 세계’ 등 다수의 저서도 남겼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지난 14일 추모 성명을 통해 “조용기 목사님은 위대한 설교자이자 뛰어난 영성가로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확산에 지대한 공헌을 남기셨다”고 기억했다.

또 “산업화 시대, 실향민들이 서울로 집중되는 변화의 시기에 십자가 복음을 통한 삶의 변화와 긍정적 삶의 가치를 가르침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희망으로 세상을 이길 용기를 갖게 했다”고 회고했다.

한교총은 “목사님께서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기 위해 NGO 선한사람들(현 굿피플) 설립과 헌혈운동, 소년소녀가장 돕기, 4704명의 심장병 어린이 무료시술, 평양 심장병 병원 추진, 국민일보 창간 등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며 한국교회를 위한 큰 족적을 남기셨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