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윤리’ 강의하며 청렴한 척 한 그… 그보다 더한 ‘그들’

2021-10-15
김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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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에 명예 묻은 ‘법조 커넥션’

딸 취직에 아파트 분양받은 박영수 특검, 변호사 개업도 안 하고 고문료 2억 원 받은 권순일 전 대법관 등… 직원 16명의 작은 지역 부동산 회사인 화천대유에 쟁쟁한 법조인들 관여

소년등과(少年登科)는 부득호사(不得好死)로 이어진다?… “고시패스 한 번으로 평생 갑질하다 퇴임 후 토착 비리세력과 손잡고 돈벌이하는 것들은 모두 싹쓸이해야 한다”는 여론 비등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지도부가 지난달 30일 화천대유 대장동 게이트 특혜수익 환수 촉구를 위해 예금보험공사를 방문해 피켓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지도부가 지난달 30일 화천대유 대장동 게이트 특혜수익 환수 촉구를 위해 예금보험공사를 방문해 피켓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년등과(少年登科)는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다는 말이다. 개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 되어야 할 것인데, 옛 어른들은 ‘소년등과는 큰 불행이다’라고 못 박았다. 인격이 성숙하기 전에 출사하게 되면 자칫 오만과 편견에 빠져 성찰이 부족해짐으로써 폭주하다가 패가망신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과거제는 오늘날 고시패스가 그 맥을 잇고 있다.

‘고시패스 한번 하고 평생 갑질을 하다가, 퇴임 후 토착 비리세력과 손잡고 돈벌이하는 것들은 모두 싹쓸이해야 한다.’ 요즘 이런 격앙된 여론이 비등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이라는 ‘대장동 게이트’ 관련 법조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년등과는 부득호사(不得好死), 즉 ‘좋게 죽지 못한다’라는 말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사림의 당쟁 다툼에서 진 쪽은 귀양 가고 멸문지화를 당하는 삶에 비추어 볼 때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대장동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블랙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대장동 투기세력의 몸통이 누구인가?” 여야의 설전은 극한대결로 치닫고 있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 ‘대장동 게이트’는 수사결과에 따라 여야 어느 한쪽에 치명상을 줄 것이 뻔하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또한 분노감과 허탈감을 넘어 과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대장동 게이트’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유독 법조인들이 많이 나온다. 박영수 전 특검이 화천대유에 고용된 것은 2015년이다. 화천대유는 직원 16명의 작은 지역 부동산 회사다. 박영수 검사는 대검 중수부장과 고검장을 지내 특수통 검사들이 ‘형님’으로 불렀던 ‘보스’였다. 그런 보스가 말년에 지역 부동산 회사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음험하다.

“알고 지내던 회사 대표의 권유로 갔다”고 하는데 보스의 변명치곤 치졸하다. 회사 대표는 법조출입 기자였던 김만배씨였다. 보스는 자신의 딸까지 같은 회사에 집어넣고 아파트 분양을 받게 한 걸 보면 이는 보통을 넘어서는 꿍꿍이 수작으로 비친다. 그런 박영수는 특검으로 변신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에 몰아넣었다. 그때 수사지휘자는 윤석열 현 국민의힘 후보다.

‘흑석동 투기 논란’의 당사자였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밝힌 ‘부동산 몰빵’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겨레 기자 출신인 김 의원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김만배 기자는 20년 넘게 법조만 출입한 기자다. 곽상도, 박영수, 김수남, 강찬우 등 잘 나가는 검사들과 남다른 관계를 유지했다. 윤 전 총장도 검사 시절 기자들과 농도 짙은 관계를 유지한 검사다.”

그러면서 “2016년 박영수 특검 당시 김 기자가 윤 전 총장을 수사팀장으로 추천했다”며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의 친누나가 윤 전 총장 부친 소유 단독주택을 시세보다 싼 19억원에 샀다고 주장하나, 시세보다 비싸게 사줬을 경우 뇌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이번 게이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지탄받는 인물이다.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화천대유 고문으로 연봉 2억 원을 받은 걸로 나타났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법조 윤리’를 가르치면서 청렴한 척은 다했다.

그는 대법관 시절 이재명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짜고 치는 고스톱 멤버라고 부른다. 대법원 판사까지 한 사람이 돈에 눈이 멀어서 한평생 쌓아온 명예와 자존심을 모두 팽개쳤다면 그는 탐관오리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또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과 김기동 전 검사장이 화천대유 자문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 지난달 29일 밝혀졌다. 최서원씨(전 최순실)의 변호를 맡았던 이경재 변호사도 고문으로 위촉됐다. 권 전 대법관은 월 1500만 원의 고문료,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도 자문역으로 활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법조계 인맥이 초호화 고문단의 배경이 됐다. 고문단은 아니지만,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6년간 근무하고 퇴직금 50억 원을 수령한 곽상도 의원도 검사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인물이다.

법률가는 명예와 자존심을 중시하는 직업군이다. 그러나 이번 게이트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횡행하는 곳이 법조계라고 말한다. 정의로운 잣대의 사법정신은 책 속에서 잠자는 아름다운 명구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문재인 정권 동안 친문, 친여 법조인들은 편가르기에 편승해서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꾀하면서 권력과 명예욕을 충족시켰다. 대표적인 인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대통령의 뜻을 알아서 모심으로써 개인의 영달을 보장받았다. 그에 따라 명예를 얻었고 그게 권력이 됐고 결과적으로 돈으로 환치될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미사여구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법원 판사나 헌법재판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값은 수천만 원대에 이른다.

‘대장동 게이트’ 수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전직 대법관, 검찰총장, 특검, 검사장이 지역의 조그만 부동산 회사에 들어가 전관(前官)의 힘과 법 지식을 팔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썩은 카르텔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단군 이래 개발 역사상 최대의 비리로 기록되는 부동산 투기세력의 몸통은 누구인가?

당시 인허가권을 가진 이재명 지사는 몸통인가, 깃털인가? 그는 왜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거부하는가? 당당하다면 오히려 수사를 자청해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할 것이 아닌가?

검찰과 경찰이 뒤늦게 수사를 하고 있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검찰은 화천대유 논란이 일고 나서 2주가 지나서 수사를 하겠다고 하고 더욱이 지금 수사팀의 면면을 볼 때 정권 편향적 인사들로 짜여진 것을 알 수 있다.

검찰 수사진 구성을 보면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미 친정권 인사로 알려져 있다. 수사팀이 설치된 서울중앙지검 이정수 지검장은 박범계 법무장관의 고교 후배로 이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수사팀 지휘자인 김태훈 차장은 윤석열 전 총장 징계 실무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수사 담당하는 경제범죄형사부의 유경필 부장은 이 지검장의 측근이고 김영준 부부장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송철호 울산시장의 사위이자 조국 전 장관 청문회 준비팀에서 활동했다.

경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4월 금융정보원이 수상한 자금 흐름이 담긴 금융자료를 보냈는데 5개월 동안 일선 경찰서에 묵혔다가 뒤늦게 경기남부청으로 보냈다. 경기남부청도 친정권 성향인 신성식 수원지검장 관할이다. 이러니 누굴 믿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검찰과 경찰의 늑장 수사로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이자 천하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피신했다. 남 변호사 부인(전 MBC 기자)도 위례신도시 투자사 임원으로 등재된 사실이 밝혀졌다. 사건의 열쇠를 쥔 남 변호사는 2010년 6월 이재명 성남시장이 취임한 뒤, 2013년 공공개발과 민간개발 수요가 충돌하는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국민들은 지금 ‘대장동 게이트’ 복마전에서 법률 지식을 팔아 초과이익을 벌어들인 법조인들의 면면을 구경하고 싶어 한다. 특검이나 국정조사가 그 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