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상식 무너져… 자유민주 지키고 국민 보호하겠다”

2021-03-13
김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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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 윤석열 비장한 퇴임사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 4개월을 앞두고 전격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1시간 만에 수용했다. 장관급이었던 윤 총장은 이제 계급장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 됐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비장한 결기를 보였다.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마치 대선에 나서는 출마자의 단단한 출사표 같다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한 시간여 만에 수용했다. 연합뉴스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한 시간여 만에 수용했다. 연합뉴스

'야인' 윤석열을 보면 400여 년 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어른거린다. 고위 관직에 계급장이 떼인 두 야인은 따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당시 백성(피난민 포함)들은 선조나 조정보다 이순신을 더 믿고 따랐다. 그 옛날 일이 눈앞에 삼삼한 기시감으로 떠오른다.

정유년 1597년 2월 26일 삼도수군통제사(해군참모총장) 이순신은 선조의 체포령에 따라 한산도 진영에서 한성으로 압송되어 3월 4일 의금부 감옥에 갇혔다. 사헌부가 지목한 죄명은 기망조정 무군지죄(欺罔朝廷 無君之罪, 조정을 속이고 임금을 업신여긴 죄)였다. 거기에 종적불토 부국지죄(縱賊不討 負國之罪, 적을 쫓아가 치지 아니하여 나라에 누를 끼친 죄)도 추가됐다.

이 죄목을 종합하면 이순신은 영락없는 사형감이었다. 생사여탈권을 쥔 선조가 대로(大怒)했으니 괜히 나서 말리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순신은 왜 왕에게 ‘항명’했을까. 매사 원칙에 충실한 이순신은 이중간첩 요시라의 반간계를 믿을 수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임진왜란 1차 출정에서 일본 수군이 이순신 조선 수군에게 판판이 깨지자 간첩 요시라를 이용, 이순신 제거 작전에 들어갔다. “부산포에 상륙하는 적을 나아가 물리치라.”(선조) “이중간첩의 세 치 혀를 믿고 출동할 수는 없사옵니다. 계략에 말려 수군이 망한다면 조선은 끝입니다.” (이순신)

이순신(동인으로 분류됨)의 라이벌인 원균을 지원하는 서인의 윤두수·윤근수 형제는 이순신의 명령 불복종을 탄핵했다. 그때 ‘조선 최고의 변호사’ 정탁이 이순신의 죄를 사하게 해달라는 신구차(伸救箚) 상소를 올려 선조의 마음을 움직였다.

선조는 살려 주는 대신에 경상도 초계 도원수 권율 군영에 가서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의금부에서 국문을 당한 이순신은 4월 1일 투옥된 지 27일 만에 특사로 풀려나왔다. 소복을 입은 무등병(無等兵) 신분이었다. 풀려나온 날 영의정 류성룡 등 고위관리와 지인들은 술병을 갖고 찾아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 4개월을 앞두고 4일 전격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1시간 만에 수용했다. 또 윤 총장과 말이 통하는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표도 수리했다. ‘앓던 이’ 2개가 한꺼번에 빠지자 시원함을 느꼈을 법하다. 장관급이었던 윤 총장은 이제 계급장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 됐다.

윤석열 총장은 사퇴의 변에서 비장한 결기를 보였다.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 민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마치 대선에 나서는 출마자의 단단한 출사표 같았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니 대권 도전에 방점이 찍힐 만도 하다. 대선 공약도 문 대통령이 내건 공약을 모두 뒤집어엎으면 된다. 지난 4년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국방 등 나라를 엉망진창,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애초 윤 총장과 문 대통령의 인연은 악연일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그를 일약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승진시켜 전 정권 수사·재판의 책임을 맡겼다. 전직 대통령 두 명과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기소된 사람이 100명을 훨씬 넘었다. 이를 정권 제1의 국정 과제라고 공표할 정도였다.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민주당 등 여권 인사들은 ‘정의로운 우리 검사’라는 찬사와 격려를 쏟아냈다. 그런데 파렴치와 비리, 내로남불의 끝판왕인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결국 조 장관은 낙마, 조 씨 아내와 동생은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표변(豹變, 갑자기 돌변함)했다. ‘검찰개혁’ 명분으로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칼을 빌려주어 광란의 칼춤을 추게 했다. 검찰을 ‘충견(忠犬)’으로 만들려는 술수였다.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겨누자 청와대와 법무부, 민주당에서 본격적인 윤석열 찍어내기 합동작전을 펼쳤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사건 등 모두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얽혀있어 사안에 따라서는 대통령 탄핵까지 갈 수 있는 폭발력이 강한 것들이다.

그러는 동안 윤 총장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추 장관에 의해 여러 차례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했고, 처음으로 징계를 청구 당해 직무집행이 정지되기도 했다. ‘문빠’들의 야비한 조리돌림에 ‘식물인간’이 됐다. 문 대통령이 마지막 히든카드로 들고나온 것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은 ‘부패완판’이 되는 세상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기득권이 세력을 떨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면 100번 막아도 시원찮을 ‘악법’에 저항하겠다.” 그 결기에서 애국애민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정의와 상식을 내건 윤석열과 ‘문빠’ 패거리 수장으로 군림하는 문재인을 보면 이순신과 선조를 보는 착각을 일으킨다. 선조가 이순신 후임으로 임명한 원균의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 군선에 궤멸 된다. 이순신이 수년간 자급으로 만들어놓은 판옥선, 거북선, 총통, 화약, 군사들이 일거에 수장된 것이다. 철옹성 같은 금성탕지(金城湯池)가 일거에 무너진 것이다. 오호통재라!

선조는 미안감을 표시하며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불러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시켰다. ‘나보다 백성들의 인기가 더 한 이순신, 나중에 두고 보자.’ 선조는 당장 급한 대로 이순신을 이용했다. 그런데 윤석열은 누가 다시 그 이름을 불러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