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일보

“韓, 북한인권법 제대로 시행하라”

2021-03-15
기자명 윤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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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인권보고관 文 정권에 일침

5년째 표류로 사문화… 북한과 협상 때 ‘인권 문제’ 함께 다뤄야
정부는 ‘우선순위 아니다’ 입장 견지, 북한인권대사도 인선 안 해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지난 9일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북한인권을 위한 화요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지난 9일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북한인권을 위한 화요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방관’이 UN에서 정식으로 거론됐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0일 유엔 인권이사회(UNHRC)에서 북한과 협상할 때 인권 문제를 함께 다룰 것을 한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더불어 5년째 표류 중인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을 비롯해 북한인권법을 제대로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외교가에선 “유엔이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해온 문재인 정부의 편향성을 정식으로 지적하고 나섰다”고 얘기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일관되게 “북한과의 테이블에 인권 문제를 올리는 건 우선순위가 아니다”(강경화 전 외교장관)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5년 전 제정된 북한인권법도 정부·여당의 미온적 태도로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킨타나 보고관은 코로나 사태로 더욱 악화된 북한 인권 실상과 함께 북한, 한국, 중국, 국제사회, 유엔을 향한 권고 사항들을 거론했다.

킨타나 보고관은 한국에 대한 권고 사항 8가지 가운데 “북한과의 협상에 인권 문제를 포함할 것”을 1순위로 거론했다. 이어 “향후 북한과의 경제를 비롯한 인도적인 모든 협력도 ‘인권에 기반한 틀’(human rights-based framework)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그동안의 남북 교류·협력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오히려 더 악화시켰고 북한 정권의 배를 불리는 데 도움이 됐다는 점을 꼬집어 지적한 것”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온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도 “인권 문제가 전면에 대두되면 대북 협상이 깨질 위험이 크다. 핵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해 UN의 권고와는 달리 당분간 기본 대북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인권법을 다룰 북한인권재단은 이사진(12명) 구성조차 못 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당 몫 재단 이사(5명)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있고, 주무 부서인 통일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서울 마포구에 마련했던 재단 사무실을 지난 2018년 폐쇄해 버렸다.

‘북한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목적으로 외교부에 두게 돼 있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2017년 9월 초대 대사가 임기를 끝낸 이후 지금까지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법을 근거로 설립된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는 북한 인권실태보고서를 3년째 비공개로 발간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통신의 자유에 대한 제한’도 적시했다. 작년 말 정부·여당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속에 강행 처리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킨타나 보고관은 이 법에 대해 “탈북민과 시민사회 단체들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고, 이는 국제인권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킨타나 보고관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탈북민 정착 교육 기관인 하나원에 접근해 교육 중인 탈북민들을 인터뷰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북한을 탈출해 제3국에 있는 탈북민들에 대한 보호 조치를 계속해서 마련하라”고 구체적인 사항까지 거론하며 강력한 실천을 권했다.

이 같은 킨타나 보고관의 우려·지적은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직무유기’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작년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추진하는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에 2년 연속 공동제안국으로 나서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가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선원 2명을 강제 북송한 사건(2019년 11월)에 큰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킨타나 보고관은 중국에 대해서도 “송환 시 심각한 인권 침해 우려가 있는 북한 출신자들에게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을 적용하라”고 더불어 권고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북한 인권보고서 설명을 거쳐 오는 23일쯤 표결을 거쳐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결의안에는 북한의 광범위한 인권 유린 상황과 이에 대한 책임 규명, 처벌 필요성 등이 두루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3년 만에 유엔인권위원회에 복귀한 미국도 이번 결의안 채택에 적극 나서면서 한국 정부의 동참을 압박할 공산이 크다.

다만 정부가 1년 남짓 남은 임기 내에 대북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목표로 한 만큼 국제사회의 이런 지적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고 미적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